중국 전역 '흑사병<패스트>' 확산 여행자제 및 주의 당부
흑사병
설치류의 질병으로 사람에게 감염되는 급성 전염병. '페스트'라고도 한다. 사람은 감염된 설치류와 접촉했을 때 감염된다. 잠복기는 3~6일 정도이며 갑자기 발병한다. 증상에 따라 림프절페스트, 폐페스트, 패혈성페스트로 구분된다. 흑사병은 중국과 아시아 내륙에서 1347년 유럽으로 번졌으며, 여러 차례 흑사병이 유행하여 유럽에서만 약 2,500만 명이 사망했다. 2019년 5월 몽골에서 마모트(마못)에 의해 감염된 사례가 발생했다.
개요
장내세균과 그람음성간균(Yersinia pestis)에 의해 발생하는 급성 감염병. '페스트'라고도 한다. 흑사병은 설치류에 의해 전염되며 쥐부터 도시지역에 사는 인간에까지 널리 퍼져 있어서 때로 쥐페스트나 도시페스트라고 불리기도 한다. 인구밀도가 낮은 반면 설치류수가 많은 시골지역이나 사막에서 발생하는 경우에는 삼림페스트 또는 들페스트라고 한다.
감염경로
흑사병은 원래 설치류의 질병이며 인간은 생활사 중 우연히 설치류에 의해 감염되었다. 사람은 감염된 설치류와의 접촉에 의해 감염되며 3가지의 임상적 형태를 보인다. 림프절페스트는 림프절 종창이 특징이며, 폐페스트는 폐가 광범위하게 침범당하고, 패혈성페스트에서는 페스트균이 혈액을 침범한다. 균의 생활사는 설치류-벼룩-설치류로서 가축지방병성(동물집단에 항상 존재하지만 극소수 개체만이 발병하는 경우)이지만, 어떤 환경조건하에서는 동물간유행성(특정지역에서 특정시기에 많은 동물에게 발병하는 경우)으로 전환된다.
어떤 지역에서는 선박을 통해 유입된 흑사병에 감염된 쥐가 항구 전체를 오염시켜 동물간유행성이 되기도 한다(풍토병). 인간의 주거지역 근처에 서식하는 설치류에 페스트균이 확산되어 인간에게 흑사병이 발발할 여건이 조성되기도 하는데, 이는 설치류의 수가 감소되어 죽은 동물에서 살던 벼룩들이 다른 설치류 숙주를 찾지 못하고 인간에게 침범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산발적이지만 조건이 적합해지면서 많은 수의 사람이 감염된다.
증상
사람에게 발병하는 경우 그 정도가 다양해서 가벼운 증세부터 사망에 이르기까지 천차만별이다. 경증인 경우에는 거의가 림프절페스트이지만 패혈성페스트나 폐페스트는 대개 증세가 심해 치료하지 않으면 치사에 이른다. 잠복기는 보통 3~6일 정도이지만 짧게는 36시간, 길게는 약 10일이 되기도 한다. 발병은 갑작스럽고 시작부터 증세가 확실하다. 림프절페스트가 전체의 3/4을 차지하는데, 전형적으로 떨림이 맨 처음에 나타나고 뒤이어 구토·두통·현기증 등이 나타나며 빛을 견딜 수 없게 되고 등과 사지에 통증이 생긴다.
수면부족, 감정의 둔화, 섬망 등도 나타난다. 체온은 갑자기 40℃ 이상까지 오르나 2~3일 지나면 1~2℃ 정도 떨어지며, 쇠약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보통 변비증상이 나타나는데 설사증상을 보이면 사망이 염려되는 심각한 상태임을 의미한다. 가장 두드러진 증상인 가래톳은 주로 서혜부나 겨드랑이에 나타난다.
림프절페스트는 사람에서 사람으로 직접 전파되지는 않고 벼룩을 매개체로 해서만 전파된다. 폐페스트의 증상은 기관지폐렴과 동일한데 폐부종이 나타난 지 약 3~4일 후 사망한다. 패혈성페스트는 쇠약과 뇌손상이 특징으로 발병한 지 24시간 내에 사망한다. 많은 경우 패혈성페스트는 폐렴으로 진행되기 전에 사망하지만, 진행되는 경우 환자는 전염성이 매우 강한 상태가 되어 다른 사람과 접촉하면 폐페스트를 초래하게 된다.
치료와 예방
주로 스트렙토마이신·테트라시클린·술폰아미드로 치료하며 페니실린은 효과가 없다. 흑사병의 전파를 막으려면 벼룩과 설치류를 없애고 환자를 격리시키며 감염된 물건들을 적절히 처리해야 한다. 설치류나 벼룩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에게는 백신을 접종한다.
역사적 사례
중국과 아시아 내륙에서 유래한 흑사병은 1347년 킵차크 군대가 크림에서 제노바 교역소를 포위하고, 페스트 환자의 시체들을 노포(弩砲)로 도시를 향해 쏘아보냄으로써 유럽인들에게 전파되었다. 흑사병은 지중해 항구들로부터 퍼져나가 1347년 시칠리아, 1348년 북아프리카·이탈리아·스페인·영국·프랑스, 1349년 오스트리아, 헝가리, 스위스, 독일, 베넬룩스 3국, 1350년 스칸디나비아와 발트 해의 국가들에 영향을 끼쳤다. 흑사병은 1361~63, 1369~71, 1374~75, 1390, 1400, 1664~65년에 다시 유행했으며, 치사율은 지역마다 달랐다.
밀라노 공국, 플랑드르, 베른 같은 지역에서는 비교적 피해가 적었으나 토스카나·아라곤·카탈루냐·랑그도크 같은 지역에서는 그 피해가 심했다. 도시는 전염의 위험성이 더 높았기 때문에 농촌보다 더 큰 피해를 입었고, 도시 내에서는 수도원이 가장 많은 희생자를 냈다. 그당시의 문헌 연구에 따르면, 치사율은 지역에 따라 인구의 1/8~2/3 정도에 이르렀다.
프랑스의 연대기 작가 장 프루아사르가 유럽 인구의 1/3 정도가 흑사병으로 사망했다고 한 말은 비교적 정확할 것이다. 1400년 영국 인구는 1300년 인구의 절반 가량이었으며, 영국에서만도 약 1,000개의 마을에서 인구가 감소했거나 마을 전체가 사라졌다. 대략적으로 추산해보면, 그당시 유럽에서 2,500만 명이 흑사병으로 사망했다. 서유럽의 인구는 16세기가 되어서야 1348년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1664~65년에는 런던에서 크게 유행하여 46만 명의 인구 중 7만 명이 사망했다.
중국의 광둥[廣東] 지방과 홍콩에서는 1894년에 사망자수가 8만~10만 명에 달했고, 그 이후 20년 동안 중국 남부지역의 항구를 통해 전세계로 퍼져나가 모두 1,000만 명이 사망했다. 이 무서운 재난은 많은 결과를 낳았다. 전쟁이 중단되고 무역의 갑작스러운 부진이 따르기는 했으나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더 지속적이고 심각한 결과는 경작지가 급속히 줄어든 것이었는데, 이는 많은 노동자들이 죽었기 때문이었다. 그결과 많은 지주들이 파산했으며, 노동력의 부족으로 지주들은 소작인들의 노동력을 집세로 대신하거나 임금을 주어야만 했고 기술자와 소작농의 임금도 상승했다. 이러한 변화들이 그때까지의 엄격한 사회계층구조에 새로운 유동성을 가져왔다.
영향
흑사병으로 정신적인 측면에서의 변화도 매우 많았다. 불안정과 계속적인 죽음에 대한 공포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지나치게 미신에 의존하고 불건전한 병적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흑사병의 만연으로 신분이 하락한 성직자들은 이러한 위기에 필요한 영적인 지도를 해줄 수가 없었다. 도미니쿠스 수도회나 다른 종파에서는 성직자의 수가 많이 줄어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거나 교양이 없는 사람들을 성직자로 뽑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14세기 후반에 성직자의 질과 지적인 능력은 심각할 정도로 저하되었고, 결과적으로 많은 미신적 행위와 이단이 생겨났다.
관련기사>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5520776&plink=ORI&cooper=DAUM
쥐벼룩을 매개체로 페스트균에 의해 전염되는 흑사병은 2012년 마다가스카르에서 총 256건의 발병 사례가 보고되었으며, 이 중 60명이 목숨을 잃어 세계 최대 사망자 숫자를 기록했습니다. 2017년에도 마다가스카르에서는 흑사병으로 24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14세기 중세 유럽에서는 이 전염병으로 2천500만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출처 : SBS 뉴스
원본 링크 :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5520776&plink=ORI&cooper=DAUM&plink=COPYPASTE&cooper=SBSNEWSEND
'(구)카테고리 > 오늘의 메인스크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전 도심에서 멧돼지 출몰 (0) | 2019.11.13 |
---|---|
음식점 옥외영업 전면 허용...민원·안전문제 없으면 원칙상 허가 (0) | 2019.11.13 |
통일은 천천히 분단은 빨리 해소 '김누리 교수' 프로필 (0) | 2019.11.13 |
임진강 '핏물에 오염' 심각한 환경오염 우려 (0) | 2019.11.13 |
10월 ' 청년실업률 ' 7년만에 최저 (0) | 2019.11.1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