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의원 '법무부장관 후보자' 유력 ,궁금한 추미애 의원 프로필
추미애 의원은 법조계 출신에 당 대표 이력까지 갖춘데다 검찰개혁 추진력까지 겸비해 여당에서는 청와대에 추천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관계자는 방송에서 "추미애 의원이 법무부장관에 적합하다는 의견을 이미 청와대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출처 : 투데이광주(http://www.todaygwangj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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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애 의원 프로필>
1958년 대구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부모 밑에서 2남 2녀 중 셋째(차녀)로 태어났다. 1982년 제24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였다. 남편은 대학 동기인 서성환 변호사다. 두 사람은 캠퍼스 커플이었으며, 결혼 전까지 7년간 연애하였다. 서성환은 전라북도 정읍 출신인데, 당시 영남에서 호남 사위를 보는 일은 흔치 않았다. 게다가 서성환은 다리에 장애가 있다. 이러한 까닭에 추미애의 집안에선 서성환과의 결혼에 반대하였다. 그러나 추미애는 이러한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1985년 서성환과 결혼하였다. 한편 훗날 추미애를 정계에 입문시킨 김대중은 추미애에게 "호남 사람인 제가 대구(출신) 며느리를 얻었습니다. 고맙습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2] 이 두 가지 이유로 인해 언론에선 추미애를 '대구의 딸이자 호남의 며느리'로 부른다.
사법연수원 수료 후인 1985년부터 춘천지방법원 판사를 시작으로 인천지방법원, 전주지방법원, 광주고등법원 등에서 판사직을 역임했다. 1995년 광주고등법원 판사로 재직하던 중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총재의 정계 입문 권유를 받고, 같은 해 8월 27일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하고, 당 부대변인으로 정당 생활을 시작하며 정계에 입문하였다. 이듬해인 1996년 제15대 총선에서 광진구 을 지역구에 출마해 당선되어 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 판사 출신 국회의원, 판사 출신 야당 국회의원, 소선거구제 도입 이후 서울 지역 최초의 여성 국회의원이 되었다.
초선이던 1997년 제15대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 캠프의 유세단장으로 활동할 당시 고향인 대구에 내려가서 선거운동을 했다. 당시는 지역감정이 심하던 때였다. 직전 대통령 선거인 제14대 대선 때는 야당이던 평민당 운동원들이 대구 유세를 하다 돌을 맞기도 하던 때였다.[5] 그러나 추미애는 “지역감정의 악령으로부터 대구를 구하는 잔다르크가 되겠다”고 다짐하며, 유세단 이름을 ‘잔다르크 유세단’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대구에서 지역감정과 맞서 저돌적으로 선전하는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이때 언론으로부터 ‘추다르크’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되었다.
2002년 제16대 대선를 앞두고 펼쳐진 새천년민주당의 당내 경선에서 노무현 후보를 그가 지지율이 낮을 때부터 지지하였다. 그리고 노무현이 민주당의 대선 후보로 결정되고 난 후, 노무현의 지지율이 낮다는 이유로 민주당내에서 대선 후보 교체를 위한 움직임(이른바 후단협 사태)이 일어났을 때도 후보 교체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노무현을 지지하였다. 또한 대통령 선거에 임해서는 노무현 후보 캠프의 국민참여운동본부 공동본부장으로 활동하며 노무현의 당선에 일조하였다.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희망돼지' 저금통 사업을 이끌며 선거운동을 위한 국민성금을 모아 '돼지엄마'라는 별명을 얻기도 하였다. 그리고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자이던 시절에는 당선자의 특사 자격으로 미국과 일본을 방문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후 당시 여당이던 새천년민주당 분당사태 때 열린우리당에 합류하지 않고 민주당에 잔류하며 노무현과 정치적으로 헤어지게 되었다. 한편 2004년 3월, 새천년민주당 조순형 대표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같은 당 의원이었던 추미애는 "① 탄핵 대신 개혁으로 지지층의 동요를 막아야 한다. ② 탄핵 찬성은 한나라당 지지층이 주도하고 있으니 현혹되면 안 된다. ③ 그래도 탄핵을 강행하면 역풍을 맞아 총선에 참패할 것이다."라는 ‘3불가론’을 내세우며 탄핵에 반대하였는데, 당시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탄핵에 반대한 2인 중 한 명이었다.[6] 하지만 민주당 지도부는 탄핵에 반대하는 추미애에게 “당내 2인자가 당론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너 혼자 잘났냐” 등 비난을 하였고, 결국 민주당의 당론은 탄핵 찬성으로 결정되었다. 민주당 지도부는 당시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던 소속 의원 2명의 서명까지 받아 탄핵을 추진하려 하였다. 그러자 추미애는 "감옥 간 분들 표까지 긁어모아 탄핵을 한다면 말이 안 된다. 숯댕이(범죄혐의로 수감된 의원)가 검댕이(노무현 대통령)를 나무랄 순 없다. 민주당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내가 기꺼이 표를 드리겠다." 며 결국 당론에 따라 탄핵 찬성으로 입장을 바꿨다.[7] 이후 국회에선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어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이 개시되었다. 한편 곧이어 실시된 17대 총선에서 민주당은 선거대책위원장직을 추미애에게 맡겼는데, 추미애는 탄핵 반대의 압도적 여론을 체감하고선 민주당이 탄핵에 동참한 것에 대해 당의 선대위원장으로서 당을 대표하여 사과하였다. 그리고 사과의 의미에서 3보1배를 하였다. 그러나 탄핵반대 여론의 역풍을 맞은 민주당은 9석의 의석을 얻는데 그쳤다. 그리고 이때 추미애 본인도 낙선하였다. 훗날 추미애는“내 정치 인생 중 가장 큰 실수이자 과오가 탄핵에 찬성한 것”이라고 했다.
2007년 제17대 대선에서 정동영 후보 공동선대위원장으로 활동하였고, 다음 해 실시된 18대 총선에서 당선되어 국회의원으로 복귀하였다. 2012년에는 민주통합당 최고위원으로 당선되었고, 같은 해 실시된 제18대 대선에서는 문재인 후보 국민통합위원장으로도 활동하였다. 2015년에는 문재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에 의해 지명직 최고위원으로 임명되었다. 한편 같은 해 말에 벌어진 새정치민주연합의 분당사태 때는 탈당파를 강력히 비판하며, 당에 잔류하였다.
2016년 4월에 실시된 제20대 총선에서 당선됨으로써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 지역구 5선 여성 국회의원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2016년 8월 27일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로 선출되어,[8] 민주당 역사상 최초의 대구·경북 출신 당 대표가 되었다.[9] 2017년 5월 실시된 제19대 대선에서 당 대표로서 문재인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상임선대위원장을 맡아 정권교체를 이루었다. 이로써 헌정 사상 첫 여성 집권 여당 대표가 되었다. 2018년 제7회 지방선거에서도 당 대표로서 선거를 진두지휘해 당의 압도적 승리를 이루어냈다. 같은 해 8월 임기가 만료되어 역대 민주당계 정당 대표 중 최초로 임기를 채운 대표라는 영예를 안으며 퇴임하였다.
홍콩에서 발간되는 시사주간지 《ASIAWEEK》에 의해 ‘아시아 정치 지도자 20인’으로 선정된 바 있으며, '20세기를 빛내고 21세기를 빛낼 여성 정치분야' 여론조사에서 유관순 열사와 함께 여성 10인으로 한국여성유권자연맹을 통해 선정되기도 하였다. 또한 한국유권자연맹으로부터 ‘국회의정활동 최우수상’과 전국 NGO단체연대로부터 '올해의 닮고 싶은 인물상’을 수여 받기도 하였다. 2007년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비자금 폭로 사건 당시 드러난 삼성의 내부 문건에 '돈을 받지 않는 정치인'으로 추미애가 적혀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하야하시라. 박근혜 대통령이 하야하지 않으면 헌법상 대통령에게 부여된 권한을 정지시키는 조치에 착착 들어가겠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최종적으로 계엄령까지도 준비하고 있다는 정보도 돈다"는 발언을 하여 논란이 되었다.[17]
이에 대해서 정진석 당시 새누리당 의원은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할 권한이 있다면 국회는 계엄을 해제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헌법은 국회의원 과반수가 계엄 해제를 요구하면 대통령은 이를 해제해야 한다고 77조에 못 박고 있다"라면서 "여소야대 국면에서 계엄해제권은 추미애 대표가 쥐고 있다. 계엄선포권은 박 대통령에게 있지만, 계엄해제권은 추 대표에게 있는 것"이라고 반박했다.[18]
이후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정국 당시 국방부가 치안 유지를 목적으로 군 병력을 출동시킬 수 있는 구체적인 요건을 검토한 것은 물론 무기사용이 가능한 경우까지 따져본 정황이 확인되자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의 당시 ‘계엄령’ 발언이 재조명되었다.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입수한 자료를 바탕으로 JTBC에서 "국방부가 한민구 장관의 지시로 위수령을 검토했다"는 보도를 내면서, 추 대표의 발언이 재조명받게 된 것이다.[19] 그러나 SBS는 이에 대해 "국방부는 이철희 의원의 요청에 따라 위수령이라는 제도를 들여다봤던 것"이라면서 중요한 맥락이 빠졌다고 지적했다. 위수령 검토에 대해서 보도한 JTBC와 이를 반박한 SBS 간에 공방이 발생하면서 이 사건은 언론중재위원회로 가게 되었고, 중재위는 불성립 결론을 내렸다. 이에 따라 SBS는 'JTBC의 보도가 맞았다'는 정정 보도는 물론, JTBC의 입장을 담은 반론 보도를 할 필요도 없다.[20] 이로 인해 추 대표의 발언은 설득력을 잃게 되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국군기무사령부 계엄령 준비 사건이 보도되면서 추 대표의 발언에 다시 힘이 실리게 되었다. 추 대표는 "필요하다면 국회 차원의 국정조사와 청문회도 열어 반드시 진상규명하고 책임자를 끝까지 밝혀내도록 하겠다"고 국회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였다.
https://ko.wikipedia.org/wiki/%EC%B6%94%EB%AF%B8%EC%95%A0
- 1997년 ‘여성권익디딤돌'수상 <한국여성단체연합> (남녀평등실현과 여성권익 향상에 디딤돌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
- 1999년 새천년을 이끌 ‘아시아 밀레니엄 정치지도자’로 선정 <시사주간지 (ASIAWEEK)> (홍콩에서 발간되는 <시사주간지 [ASIAWEEK]>)
- 1999년 국회의정활동 행정자치위원회 최우수상 <한국유권자운동연합>
- 2000년 ‘국민화합상'수상 <국민화합운동연합>
- 2000년 ‘20세기를 빛낸 여성 21세기를 빛낼 여성선정 <한국여성유권자연맹>
- 2000년 새천년 밝은정치인상 <바른사회 밝은정치 시민연합>
- 2003년 차세대 지도자감 1위 <시사저널> (시민단체 활동가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 2004년 국민이 뽑은 정당의 최고 정치지도자 1위 <월간중앙-ANR공동 여론조사>
- 2009년 백봉신사상 수상 <백봉 나용균 선생 기념사업회>
- 2012년 전자도서관 이용 최우수상 <국회도서관>
- 2013년 안중근 평화대상 <안중근평화재단청년아카데미>
- 2014년 국정감사 우수의원 <국정감사 NGO모니터단>
- 2014년 국정감사 과학기술 최우수 의정상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 2015년 국회를 빛낸 바른 언어상
- 2015년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국정감사 우수의원
- 2015년 국정감사 NGO모니터단 국정감사 우수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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