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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추픽추 '그들은 왜 고산에 도시를 지었을까'

ko.konene 발행일 : 2019-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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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리우그란데 대학의 루알도 메네갓트 교수는 당시 사람들이 마추픽추를 도시 건설지로 선택한 이유를 밝히기 위해 위성사진과 지상측량 데이터를 분석해 해당 지역이 안데스 산맥이 생겨날 때의 지각활동과 관계있는 단층이 교차하는 지점이었으며 시가지의 방향도 중요한 단층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아사히(朝日)신문이 28일 보도했다.

 

단단한 암반이 단층활동으로 부서지는 바람에 이용하기 쉬운 크기의 암석을 구하기 쉬웠던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메네갓트 교수는 "석조건축용 석재가 풍부하게 산출돼 잉카 사람들의 시가지 조성작업에 드는 노력이 크게 절감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바위의 갈라진 틈이 수로의 역할을 해 빗물과 눈 녹은 물이 흘러들어 생활용수를 얻기 쉽고 큰 비가 올 때도 배수가 잘 됐던 것으로 보인다.

 

단층의 '교차점'에 위치한 잉카의 고대도시는 마추픽추 이외에도 있다고 한다. 메네갓트 교수는 "마추픽추는 잉카인들이 부서진 돌을 활용했음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연구결과는 미국 애리조나주에서 열린 미국 지질학회에서 발표됐다고 아사히가 전했다.

 

 

마추픽추는 오늘날 페루 남부의 동부 코르딜레라에서 볼 수 있는 15세기 잉카의 요새화된 도시다. 

그것은 알려진 두 산맥 사이에 있는 세크레드 계곡 위의 쿠스코 지역에 위치하지만 500년 이상 동안 세계의 다른 나라들에게 비밀로 남아 있었다.

 

 대부분의 고고학자들은 마추픽추가 1450년에 잉카 황제 파차쿠티의 영지로 건설되었지만, 1세기 후에 스페인의 페루 정복 동안에 버려졌다는 것에 이견이 없다.

 

2009년 아마존 프라임의 "미스터리한 세계"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정착지를 방문했다.나레이터는 "스페인인들조차 이 지형을 정복하지 못했고 잉카인들의 잃어버린 도시를 포함해 많은 잉카 구조물들이 이 지형에 가려져 있었다"고 밝혔다.

 

"이 도시의 위치는 특이하게 오래된 산봉우리들 화이나피추와 마추피추 사이의 절벽에 해발 약 2,500m의 고도에 놓여 있다. " 

 

"변두리를 두르고있는 주거용 주택은 석재로 지어졌고 초가 지붕을 가지고 있었다."

 

중앙에는 중앙 절구가 있었고, 궁궐로 둘러싸인 광장이 있었다. 그것들은 천문학적인 목적뿐만 아니라 종교적인 역할을 했다.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세 개의 창문의 신전인 신비한 토레온인데, 여름날 창문은 태양 광선에 의해 정확히 투영되었다."그리고 태양은 신성한 동물인 재규어의 돌모양 위에 떨어졌다.

 

 

토레온 바로 밑에는 왕릉이라고 불리는 곳이 있지만, 그 곳에서 사람의 유골이나 무덤이 발견된 적은 없다.

"정착지의 원래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다. 마추픽추는 1911년 발견자인 히람 빙햄에 의해 붙여진 이름이다."

"전체 구조의 목적도 오늘날까지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하지만, 최근의 연구는 이 도시가 천체나 전설적인 인티 와타나와 관련하여 도시의 위치에 의해 주어지는 천문학의 중요한 중심지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잉카인들은 태양이 두 개의 집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는데, 하나는 북쪽에, 그리고 다른 하나는 남쪽에 있다고 믿었다.

 

마추픽추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자 자연유산인 만큼 발견 이후 이곳을 찾는 관광객도 늘고 있다.현재 페루는 페루에서 가장 많이 방문하는 관광명소 중 하나이며 주요 수입원으로 경제력과 상업력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어 있다.

 

90년대 후반 페루 정부는 부티크와 식당을 갖춘 관광단지와 부티크 및 식당과 부지에 다리를 놓는 등 케이블카와 고급호텔을 건설할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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