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태석 신부님 프로필
수단의 슈바이처, 이태석 신부님
‘울지마 톤즈’라는 영화의 실제 주인공인 이태석 신부님을 알고 있나요?
이태석 신부님은 그동안 걸어왔던 의사의 길을 접고 2001년 신부가 되어 아프리카 수단 남부의 ‘톤즈(Tonj)’라는 마을에서 사람들을 돕기 시작했습니다. 그곳에서 신부님은 총과 칼을 들고 노는 아이들에게 악기를 가르쳐 서로 화합하고 즐겁게 사는 법을 알게 하고, 학교를 지어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외면받는 한센병 환자를 돌보며 마을의 유일한 의사로서 활동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단에서는 이태석 신부님을 수단의 슈바이처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이태석 신부님은 2010년 49살의 나이에 대장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의 정신은 계승되어 수단 어린이 장학회를 통해 후원금을 모아 톤즈에 학교와 병원을 건립하고 많은 학생에게 교육의 혜택을 주고 있습니다. 이태석 신부님은 톤즈 마을 사람들의 가슴 속에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1981년 부산경남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87년 인제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뒤 장래가 보장된 의사의 길을 버리고 사제가 되기로 결심했다. 군복무를 마친 뒤 1991년 살레시오회에 입회했다. 1992년 광주가톨릭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2001년 사제서품을 받자마자 아프리카 수단의 톤즈로 파견을 자청하여 그곳에서 교육과 의료봉사에 헌신했다.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렸다.
톤즈에 병실 12개 짜리 병원을 짓고 하루에 200~300명의 주민을 진료했다. 한센병을 비롯한 전염병으로 고통받는 주민들을 보살폈으며, 학교와 기숙사를 세워 가난한 어린이들이 자립하도록 도왔다. 음악으로 아이들 마음 속에 남아 있는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고자 노력했다. 2008년 8월에는 사우스캘리포니아 주성령쇄신대회에 강사로 초청받아 한인들에게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으며, 그의 아낌없는 희생은 가톨릭 신자들을 중심으로 '미주 아프리카 희망후원회'를 결성, 수단의 어린이들을 활발하게 지원하게 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2008년 11월 휴가차 한국에 왔다가 대장암 판정을 받고 1년간의 투병생활을 이어갔다. 투병중에도 그는 병원이 아닌 서울 대림동 공동체에서 머물며 젊은 이들을 위한 곡을 작곡하는 등 삶에 대한 의지를 꺾지 않았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 닥치더라도 유머를 잃지 않았던 그의 모습은 어려움을 겪는 많은 이들에게 큰 용기가 되었다.
이태석 신부의 장례미사는 2010년 1월 16일 살레시오 관구관에서 1,500명의 조문객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됐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조문객 대부분은 생전의 이태석 신부를 만난 일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이태석은 아프리카 톤즈의 일상을 집필한 에세이집 〈아프리카의 햇살은 아직도 슬프다〉(2009)라는 책을 냈으며, 2006년 11월 제7회 인제인성대상 특별상, 2007년 3월 제23회 보령의료봉사상, 2009년 12월 제2회 한미 자랑스런 의사상, 2010년 제1회 KBS 감동대상 대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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